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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 글쓰기

Updated: May 31, 2018

"교회의 NGO 설립은 새로운 선교와 기독교의 회복의 새로운 방법이다."


11.14.2016.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는 기독교인과 기독교의 교리와 다른 삶과 행동에 따른 많은 비판과 질타를 받으며 기독교의 이미지가 실추되어져 갔다. 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명에 따른 선교와 전도를 행하지만 실추된 이미지로 말미암아 쉽지않는 실태이다.말테 리노 루터대 교수는‘ 종교개혁500주년 기념 한국교회 새 변화를 위한500인 대화마당’ 행사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한국 개신교의 이미지는 지금 최악이다. 늘 안타까웠다. 제가 겪은 대부분의 목사들은 늘 최선을 다하고 성서를 중시하는 훌륭한 분들이다. 문제는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이 돈과 역량을 지나치게 휘두르고, 정치와 권력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분들만 주로 언론에 나오니까,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1]라고 이야기 했다. 이런 이미지들로 말미암아 무신론자나 비기독교도들 역시도 기독교 선교에 큰 비중을 두는 선교사들의 태도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2]

또한 많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그들의 국가적 이념과 통치를 위해서 기독교를 반대하고 종교를 탄압하고 있다. 중국 삼자교회의 지도자인 띵꽝쉰(丁光訓)은 정부관리들의 종교업무에 대한 인위성과 인치성적인 행동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그는 “간부와 공안, 민병(民兵)을 동원하고 전자봉(電子棒)을 사용하면서 종교그림을 찍고 성경과 서적을 몰수하였고, 신도들을 감금하고 벌금, 단수(斷水), 단전(斷電), 구제(救濟)양식 보급 중지, 가옥파괴 등의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다”고 강하게 항의 했다.[3]이처럼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신들의 이념과 사상보호를 위해 탄압하고 있다.

네팔은 현재 법적으로 선교가 금지된 나라이다.그럼에도 서구 선교사들이 설립한 네팔연합선교회(United Mission to Nepal)는 처음부터 네팔의 근대화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선교회 조직을 허락 받았다. 물론 직접 선교가 아닌 의료, 교육, 농촌, 사회복지 등의4분야에서만 활동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정직한 선교가 오히려 종교적으로 닫혀 있는 나라의 문을 열 수 있고 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4]한 예를 들면, 시리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다라야 지역 주민들이 인간띠로 긴급구조 신호인'SOS' 글자를 만들어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5]는 기사처럼 무슬림의 영향 아래 있는 국가 역시도 국제사회의 구호 단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그들을 수용하는 모습을 띄고 있다.이처럼 다른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세계에 불어오는 경제적, 환경적 위기로 인하여 많은 도움의 손길을 요구하는 실정이며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각종 구호단체(NGO포함)를 보다 쉽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1974년 케냐에는 단지125개의NGOs가 활동하고 있었다(Bratton 1989). 1990년에는400개가 넘는 단체들이 케냐 정부에 등록되어 있었고, 2000 년에는3,000개 정도로 증가했다. 2008년 현재6,000개가 넘는NGOs가 케냐 에서 활동하고 있다(Brass 2010). 이 지역 대부분의NGOs는 교육이나 보건 서 비스, 빈민 구호 등 전통적으로 정부가 수행했거나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아프리카 대륙에서NGOs의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질적 변화는 외국 원조(Foreign Aid)의 뚜렷한 증가와 함께 발생했다. 이 지역의 외국 원조 사업에NGOs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짐에 따라NGOs는 단순히 외국 원조를 이행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지역에 필요한 원조 내용과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6]이처럼 한국기독교선교는NGO를 선교 정책으로 추진하려 할 때에 보다 효과적인 선교 방법이 될 것이며 그것을 발판 삼아 기독교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정직한 선교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정직한 선교를 위한 효과적 선교 방법인 NGO에 대해 이야기하기전에 NGO가 무엇이며 NGO가 기독교에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NGO는 언어적 의미는 비정부 기구로써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줄임 말로서 어떠한 종류의 정부도 간섭하지 않고, 시민 개개인 또는 민간 단체들에 의해 조직되는 단체를 의미하며 NGO는 인류의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개발국가의 개발을 돕는NGO들을 ‘개발NGO(Development NGOs)’라 고 지칭하며[7]환경에 관련된 환경NGO, 여성의 인권보호를 위한 여성NGO, 국제 구호와 기아를 위한 구호 NGO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8]이 가운데 기독교NGO란 종교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본질적 영역을 수행하지만, 일반 세상과 사회에 관련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NGO단체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중국,미얀마, 방글라데시, 태국, 인도와 같이 이슬람이나 불교가 국교인 나라나 기독교 신자의 수가 극히 적은 지역으로 파견된다. 특히 이러한 나라들은 법적으로나 사회적 분위기의 차원에서나 기독교 선교가 용이하지 않아 선교사들의 투철한 신앙심과 영웅적인 용기를 필요로 하는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합법적인 영역에서 선교활동을 수행하기가 어려워 해당 국가 내의 주류 사회에 접근하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소수자들과 먼저 접촉하는 경우가 많다. [9]이러한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효과적 기독교 선교를 위해 종교의 색이 약한 NGO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접근하여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한다. 교회가 이러한 NGO선교를 해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수행은 선교의 필수 불가결의 차원이며 그것은 전도를 위한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선교적 의미를 가지며 독자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전도가 사회변화의 차원을 내포하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수행이 전도의 측면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나 하나가 다른 쪽에 종속되지 않고 각기 충분한 선교적 의미와 기능을 가진다는 뜻이다. 보통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에 주로 영향을 받은 교회들은 인간구원과 교회개척에 치중한 선교관을 고수하여 왔다.[10]하지만 이 방법에는 사회적, 법적 한계가 있으므로 기존 전통적 선교관에서 탈바꿈하여 사회성이 더 높은 기독교 선교라는 방법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기독교 개발NGO와 선교단체의 역할 및 규정이 불분명하다. 이는 태생적으로 서로의 영역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그 근본 원인이라 하겠다. 발생기원의 순서를 따지자면 역사적으로 지역교회가 제일 먼저이며 그 후 선교단체들이 그리고 기독교 개발NGO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선교와 구제 및 봉사가 오롯이 교회를 통하여서만 진행되었으나 차츰 선교를 담당하는 전문기관들이 발생되었고 이와 함께 개발도상국에서 구제와 봉사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기독교 개발NGO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발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적 요구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습으로 아직까지 서로 간의 구분이 모호하여 중첩되어지고 불분명한 역할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면서 분할되어지고 전문성을 갖게 되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이제는 그 역할과 정체성이 구분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유의할 점은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들이 선교적 목적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NGO를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는 버려야 할 것이다.[11]

인도에서 활동한 마더 테레사 수녀의 경우도 카톨릭을 거부하는 힌두교인 인도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고 그녀가 죽었을 때 인도의 힌두교인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도들도 그녀에게 존경을 표하였다.마더 테레사를 만난 힌두교인 고메스라는 사람은 테레사 수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나는 테레사 수녀님을 가톨릭교라든가 힌두교라는 관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인간’이란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수녀님은 종교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모든 종교와 사람을 존중합니다. 수녀님이 경건한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수녀님은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12]대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동기의 봉사와 희생은 신앙의 기본정신이다.

이렇듯이 교회가 세상 가운데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나아가 봉사와 희생을 감수하며 세상을 섬기는 모습을 갖는다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더 많은 빛과 향기를 발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NGO의 이용이 아닌기독교 개발NGO와 선교의 각각의 전문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움직여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선교 단체(NGO)나 기독교 개발NGO는 교회 파생되어진 병행단체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교회와 선교단체 기독교 개발NGO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져야 한다. 만일 선교단체와 기독교 개발NGO는 교회를 떠나서 존재한다면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며 더 이상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존재가 될 것이다.지역 교회는 그리스도 앞에서 예배와 성례의 기관으로, 선교단체(NGO)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를 전하는 전도의 기관으로, 기독교 개발NGO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기관으로 존재하며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그 중심점에 위치하고 있어야 할 것이며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상호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중심이 올바르게 잡힌 정체성과 전문성을 겸한 기독교 개발NGO라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도구로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1]김혜영, “[인터뷰] 한국생활23년... 말테 리노 루터대 교수” 한국일보, 2015년 11월 29일

[2]이명근, “NGO와 함께하는 선교” 서울: 쿰란출판사, 2010. P139

[3]왕쓰웨, “사회주의 시기 중국의 종교문제와 선교과제” 중국교회와 선교 제5호. 1995년7월19일, 120

[4]김규호, “한국기독교개발NGO와 한국기독교 선교와의 관계개선에 관한 소고:비판적 시각에서 본 한국기독교의 선교활동” (석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NGO대학원, 2003) 62, RISS, http://www.riss.kr/link?id=T9023154. (2016년11월2일 검색)

[5]한상용, “시리아 여성·어린이'SOS' 인간띠…국제사회에 구호 요청” 연합뉴스,2016년3월11일

[6]조원빈. “아프리카인들이 이해하는NGOs와 정부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NGOs and Government: African Perspectives.” 다문화사회연구5(2012): 43-70 http://www.dbpia.co.kr/Article/NODE02465532 (2016년11월01일 검색)

[7]김규호, 6

[8]조희연. NGO가이드: 시민,사회운동과 엔지오 활동. 서울: 한겨레 신문사2001

[9]Charles H. Kraft, 기독교 문화인류학(Anthropology for Christian Witness),안영권, 이대헌 옮김(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5) 253-254.

[10]서정운, 현대교회와 사회봉사, 유의웅 편저(서울: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1991) 95-97

[11]김규호, 64

[12]신홍범. 마더 테레사: 그 사랑의 생애와 영혼의 메시지. (서울: 두레, 2016),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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